일을 관두기 전 마지막 주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들이 다 그렇듯, 시원/섭섭/찹찹한 그 묘한 기분에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속에서 무겁고 답답한 것이 자리잡고 있었고 괴로웠다.
딱 하루 볼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몇년만에 만난 선배와 반가워하며 거리로 나갔고, 모처럼 MCA에 들렸다.
한동안 미술관에 오질 않았었다.
부정적인 시각이 언제부턴가 내 안에서 싹트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트레인을 타면 금방인데 참 그게 어렵다.
--------------------------------------------------------------------------------One-way colour tunnel (2007)
엘리아슨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관람을 시작했다.
선배는 '너가 좋아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는데, 솔직히 반예술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던 터라
별 기대는 없었다.
전시회 이름이 Take Your Time 이다.
나도 정말 그러고 싶다.
Room for one colour (1997)
엘리아슨은 인터미디어 아티스트다 - 요즘은 누구나 그렇지만.
주로 설치작업을 하였는데 원천 쏘스로 빛을 사용하여 실로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그는 인공적인 자연현상을 만들어 내는것에 초점을 맟추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기계와 도구를 사용하여 자연을 Manipulate 하는데, 각 작품들은 극한으로 미니멀 하게
표현이 절제되어 있었다.
Reimagine (2002)
빛을 사용하여 벽에 깊이를 더한다.미술사에 관심있는 사람은 바로 지오토나 바사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시퀀스로 작동하는데, 컴퓨터로 프로젝션을 한 것이 아니라7대의 스포트라이트를 사용하여 대단히 아날로그 적인 느낌을 준다. 기술적으로는 별 것 없다.
하이테크도 아니다.
복잡한 프로그래밍으로 알고리듬에 맟추어 실시간으로 생성해 내는 이미지는 더더욱 아니다.
전구
조명
거울 등.
단순하다.
네트상에서 이미지로 찾은 작품의 결과물만을 본다면
'뭐 이건 나도 하겠네/컴터로 하면 5분이면 만들겠는데, 아니 1분.'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360° room for all colours (2002)
은은하게 빛나는 둥근 형태의 벽.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수시로 변한다.
그런데 그 단순미가 임펙트가 상당히 강하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그리고 보고 또 보고 있으면 일종의 경외감까지 느끼게 할 정도이다.
그 이유는 작품 자체뿐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서 나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이입하고, 다시 그것을
느끼는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인 듯 하다.
그가 만들어 내는 인공의 자연은 디지탈과 3디로 만들어 내는 신세계의 쾌락이 아니다.
사람이 가진 기억, 상식, 촉감등을
지극하여 나 스스로가 자연을 상상하고 만들어 내도록
돕고 있었다.
작고 단순한데 개인적으로 최고의 임펙트가 있었던 작품.
깜깜한 방에 방에 옅게 뿌려지는 물에 빛이 닿아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어 낸다.
실시간으로 변화하며, 입체적이고, 만지고 느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인터렉티브 그 자체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소리인데, 물이 나오는 과정에서 나오는 샤아아...
하는 소리가 내가 자연의 한 복판에 와있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로 만들어 준다.
마치 동굴 안에 있는것 같기도 하고, 거대한 폭포를 바라보던 기억과 겹치며
발걸음을 굳히고 묵묵히 바라보게 만들었다.
저 물 안을 마음대로 지나다닐 수도 있다.
'야, 가봐' '가도 돼?' 대화하는 관객들이 귀엽다.
팝아티스트들의 선언과 마찬가지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이란
시멘트와 전광판, 패스트푸드, 쓰레기 및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경쟁과 중독, 맹목적으로 증폭되는 쾌락에 시달리다 보면
자연 현상이란 그저 BBC 다큐멘터리나 네쇼널 지오그라피에 나오는 것이다.
생각.
단순한 이미지 앞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것.
본능적이고 맹목적인 쾌락을 쫒아온 나에게 있어 그것은 잃어버린 기억과도 같았다.
Cube Structural Evolution Project (2004)
방의 한 코너에 레고블럭들이 놓여져 있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원하는 모양을 만들고 간다.
여러가지 상상력이 쌓여간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앞에 앉아있는 수많은 어린아이들과 어른의 모습이었다.
특히 어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른들은 레고블럭을 가지고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에겐 레고블럭은 마치 지금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거울 같았다.
스펙, 테크닉, 경쟁과 싸워오면서 오면서 정작 내가 원하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그저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뒤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떠 밀리듯 쫒는 것은 아닐까.
나는 대체 뭘 만들어 가고 있는 걸까?
아니, 그의 전시회 전체가 나에게 묻고 있었다.
점점 발전되는 하이테크 기술
쏟아지는 아이디어와 미디어
끊임없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상품들
쌓여가는 정보들.
모든것이 점점 늘어가고 더해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잃어가고 있는 것을 무엇일까.
*시드니에 있다면 2010년 4월 11일까지 MCA에서 전시를 하니 꼭 가보기를 권장한다.